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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그리고 여행

공주 공산성

by 심향 2025. 10. 12.

2025년 10월 11일(토)맑음

공산성은 금성동, 산성동에 걸쳐 있는 공산에 축조된 고대 성곽으로 산 전체가 성곽 및 관련 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웅진성, 쌍수산성, 공산산성, 공주산성 등으로 불리는 공산성은 1936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되어 오다가 1985년에 이를 다시 사적 공원으로 지정하여 개발이 진행 중이다. 특히 1980년부터 1993년까지 계속된 성내의 유적 발굴조사와 정화 · 정비는 공산성의 역사적 면모를 일신하고 있기도 하다.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공주를 지키기 위한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이었다. 문주왕 원년(475) 한산성에서 이 곳으로 도읍을 옮겨 삼근 왕, 동성왕, 무녕왕을 거쳐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옮길 때까지 64년간 왕도를 지켰다. 북으로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는 천연의 요새로서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포곡형이며, 원래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선조, 인조 시대에 대부분 현재와 같은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성곽의 총 길이는 2.660m로 외성을 제외하면 2.193m 가 된다. 성의 면적은 약 21만 평방미터이며, 현재의 성벽은 높이 약 2.5m, 너비 약 3m 로 대부분이 보수되었다. 성 내 유적으로는 진남루, 공북루, 쌍수정, 명국삼장비, 쌍수산성 사적비, 영은사, 연지, 임류각지, 군창지, 동서문지, 추정왕궁지, 만아루지, 암문지 등이 남아 있다.

   .
(주반고루화촉명 금성사죽정굉굉 가인공패풍류흥 소도계성시노성)
취흥이 도도해진 높은 누각에 촛불 밝고, 금성의 풍악이 낭자하구나.
미인은 풍류의 흥취 망가질까봐, 새벽 닭 우는 소리를 강의 백로 울음이라 농으로 말하네.

이 시는 조선 선조 때 문신이요 문인인 柳根(유근 1549~1627)이 忠淸道觀察使(충청도관찰사)인가 按察使(안찰사)인가로 공주에 왔을 때, 도내의 각 守令(수령)들과 공북루에서 큰 잔치를 베풀며 온종일과 온밤을 보내고 있을 때 지은 시이다. 취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별안간 닭 우는 소리가 들리매, 유근이 “이 소리가 무슨 소린고?” 하고 묻자 곁에 있던 기생 陽臺雲(양대운)이 “그 소리는 강가에 있는 백로의 소리올시다.” 대답하니, 유근은 이 대답이 자기 마음에 맞아 그 기생을 어루만지며 좌중으로 하여금 시를 짓게 했다. 그 때 문의현감인 지은이가 맨 먼저 이 시를 지어 내놓았는데, 가장 인기 있는 시여서 사람들이 다투어 읊었다고 한다. 기생의 대답도 기발하지만 이 시의 익살 또한 그에 못지않

     배다리

      

      백제와 함께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겨우 지탱하고 있는고목

  연지는 공산성안에 있는 연못 중 하나이다. 단(段)의 형태로 석축(石築)을 정연하게 쌓았으며 동서양측에 넓은 통로를 둔 것이

  특징이며 깊이는 약 9m이다. 연못과 금강사이에 만하루(挽河樓)라는 정자를 세웠다.

     마하루 와 연지

  

   유유히 흐르는 금

  임류각(臨流閣)은 백제 동성왕 22년인 500년 봄에 축조된 누각으로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사용되었다. 높이가 16.5m에 달하며, 1980년 공산성을 발굴하면서 임류각 터로 추정되어 1993년 복원하였다.

  고아복루는 원래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控北樓) 옆에 있던 누각을 현 위치로 옮기고 8. 15광복절을 기린다는 의미로

   광북루라 개칭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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